사무실에서 좋아하게 된 몇 가지 일 중 하나는 기한이 지난 포스터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다. 현재 사무실 게시판의 포스터 중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떼어 낼 포스터는 12월 17일 토요일에 있을 ‘여성이론연구소 학술대회’ 관련 포스터이다. 반면 ‘제 3회 대학원생 로컬리티 논문현상공모’의 기한은 2012년 5월 18일 금요일까지다. 그러나 6개월의 틈이 있을 뿐 궁극적으로 그들은 모두 미래가 현재로 응고되면서 버려져야 한다는 데 차이가 없다.
미래는 연극이나 학회 등의 포스터 별로 모자이크 조각처럼 공간을 점유한다. 지나간 시간은 비워져고 사각형의 공백이 생긴다. 공백에 꼭 들어맞도록 새 게시물 한 장을 삽입한다. 시간이 기어이 앞으로 하염없이 가고 있다는 게 레고 조각이나 테트리스 블록을 끼워맞추는 것만큼 즐거워진다. 지나간 시간이 물러난 자리는 곧 다가올 미래로 빼곡해진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완전히 텅 빈 게시판을 꿈꾼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무섭도록 가속도를 내서 미처 새 포스터들이 도착하지 못하거나 아무도 포스터를 보내지 않거나, 아니면 시간이 정지해서 미래의 포스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거나.
덧글
2011/12/15 23:5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베리배드씽 2011/12/16 16:47 #
연말이라 그런가. 여러 생각이 드네요.
2011/12/16 00:1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베리배드씽 2011/12/16 16:49 #
별 거 아닌 생각들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당고 2011/12/16 01:22 # 답글
이제 곧 방학이 아닌가요? 한가한 날들이 찾아오기를. 비록 춥더라도 말이죠.
베리배드씽 2011/12/16 16:52 #
당고님이야말로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시잖아요. 저는 이제 조금씩 시간이 나고 있어요.
정신적으로는 더 별로인 것 같지만요. ㅋㅋ
택씨 2011/12/17 17:11 # 답글
베리배드씽 2011/12/20 15:03 #
포스터 교체는 좀 귀찮은 일인데 상상하기 나름이더라고요.
커피향기 2011/12/19 22:35 # 삭제 답글
늘 같은 걸 되풀이하면서도 전혀 고쳐지지 않은걸 보면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 틀림없습니다 ㅎㅎ
따뜻한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미 조금은 틀려진것 같지만요 ㅎㅎ
베리배드씽 2011/12/20 15:07 #
이젠 익숙해요. ^^ 나름의 바이오리듬이겠거니 하죠.
사람은 정말 좋은데 용기가 필요한 일보다는 최악이 아니면서 익숙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하는 듯해요.
잘 잊어버리기도 하고요. 그것을 고치지 않음으로써 은연중 나에게 편안하거나 견딜만한 부분이 있으니 반복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커피향기님 연말은 왠지 닉네임처럼 그윽할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춥지 않게 건강하게 보내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