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러브 by 베리배드씽

 이 주 전 일요일 오후에 봤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스크린에서 한참을 못볼 것 같아서 황사를 가로지르고 경기도에서 씨네큐브까지 상경했다. 눈썹을 그릴 때쯤 전화가 왔는데 피곤하고 귀찮을테니 그냥 집에서 쉬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 잠이 솔솔 와서 조금 걱정됐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오십을 넘긴 노총각 형만(안성기)이 죽은 친구의 딸인 남은(이하나)과 일구는 첫 연애가 큰 줄기다. 나이차가 큰 커플임에도 여느 젊은 연인들만큼 풋풋해보이는 데는 두 배우가 지닌 이미지가 상당한 몫을 한다. 넉넉한 주름에 고루하지 않은 연륜이 밴 안성기의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 이 연애에 대한 신뢰감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내게는 이하나 쪽이 좀 더 인상적이었다. <연애시대>, <메리 대구 공방전>등의 드라마에서 밝고 능청스런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 이하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고 있어도 아련한 우수가 느껴진다. 전부터 했던 생각인데 이 영화를 통해 그 지점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꽤 장신임에도 성숙했다기보다는 껑충하게 웃자란 소녀같은 이하나는 <페어러브>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결핍과 공허를 견뎌야 하는 남은과 썩 잘 어울린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형만은 남은의 유사 아버지가 되려 한다. 이는 남은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지만 사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잖아도 형만의 눈에는 이십 대 중반인 남은이 서투르고 어설퍼 보일텐데 가정 환경 탓에 심리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남은은 여느 또래보다 더 미숙하게 여겨진다. 형만은 남은에게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미래를 원한다. 반면 남은은 형만이 구축한 단단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싶어한다. 아버지의 부재보다 고양이의 죽음을 더 슬퍼했던 남은에게는 현실을 다그치는 억압과 강요보다 정서적 충만함이 더 중요한 듯하다. 남은은 형만이 카메라 수리공으로 대표되는 비좁고 정체된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이상을 펼치며 자신과의 접점을 넓혀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형만의 세계는 또한 처음에 남은을 매료시킨 그 지점이기도 하다. 연애에서 매력의 요인이 후에 갈등의 발화점으로 변질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또한 끝없이 남은에게 현실적인 안목을 설득하는 형만은 남은이 유학을 떠나려 하자 두려운 속내를 털어놓는다. 형만에게는 남은이 좀 더 성숙했을 때, 보다 세속적인 성장을 이뤘을 때까지 이 연애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들은 서로에게 모순된 바람과 이지러진 불만을 투영하며 나를 위해 달라지기를 종용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여느 연인들이 다 그렇듯이.

 현재에 정주하려는 남자와 정서적 교류을 갈구하는 여자가 있다. <페어러브>에서 이 일반적인 구도는 부녀관계를 방불케 하는 연인들을 통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어떤 합의점을 도출했을지 궁금하다. 사실 다시 시작했는지의 여부조차 잘 알 수 없다. 그리움은 끝내 누그러질테니 극적인 타협이 절실하다. 확률은 정확히 50대 50이었다.

덧글

  • 당고 2010/04/01 15:06 # 답글

    한 번쯤 나이 많은 사람이랑 사귀어보고 싶긴 한데, 유사 아버지는 좀 버거울 듯; 현실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인생 경험이 더 많아서 좀 더 현실적인 정도겠죠; 특히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라는 속설을 생각하면 ㄷㄷㄷ
  • 베리배드씽 2010/04/02 15:27 #

    존경하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는 여자분들 있잖아요. 그런 경우엔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있는 걸 선호하더군요. 저는 제가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는 동등한 대화상대인 쪽을 더 좋아해서 되도록이면 나이차가 많이 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자들이 철이 없다면 여자들은 잔소리쟁이인 건가요.ㅋㅋ 남자들이 결혼하면 좀 변하나봐요. 연애할 땐 그렇게 애라는 생각 많이 안드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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