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 <명랑> by 베리배드씽

명랑은 형용사 ‘명랑하다’의 명랑이 아니라 소설 속 할머니가 자주 복용하는 진통제 이름이다. 부패가 시작된 할머니의 냄새를 감추려 끊임없이 투여되는 방부제 이름치고는 다소 짓궂은 감도 있다.

제목에서부터 시작된 아이러니는 할머니의 몸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녀의 몸은 ‘소멸과 진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손은 말라비틀어진 빵 같지만 발은 촉수를 세운 더듬이-아기처럼 보드랍고 작은 발이다. 머리카락은 한 줌 밖에 남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죽고 나자 아들이 어렸을 때 잘 나오지 않던 젖이 부풀어 오른다.

이러한 그녀의 아이러니한 몸은 두 시선-손녀와 며느리에 의해 묘사된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1인칭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설정 자체는 억압적일 수 있다. 그녀의 몸은 두 시선에 의해 묘사되는 과정에서 응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가족애에서 비롯한 정감을 자아낸다. 사실 그들은 할머니뿐만 아니라 서로의 몸을, 자신의 몸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 몸은 그들이 산 과거의 현재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딸은 아버지를 횟독 오른 발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엄마는 노인보다 늙어버린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한탄한다. 그리고 소멸과 진화가 공존하는 할머니의 몸은 곧 그녀가 살아낸 호사스런 삶을 확인시켜준다.

신체 묘사 중에서도 중심부에 있는 이미지는 ‘발’이다. 그리고 여기에 효과적인 배경으로 자리하는 것이 ‘냄새’에 대한 묘사다. 냄새는 이 소설에서 하나같이 감출 수 없는 비릿한 일상을 노출한다. 그 가운데 할머니의 발은 소설 첫머리부터 천운영이 장기인 세밀한 묘사력을 발휘한 대상이다. 그리고 손녀딸의 직업이 바로 발마사지사다. 비록 서로를 가족관계를 애써 지운 호칭인 그녀, 노인네 등으로 명명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발을 잡으며 투닥거린다. 손이 공식적인 소통을 매개하는 신체부위인데 반해 발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전해지는 비공식적 소통을 가능케 한다.

메시지는 참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랑>은 소외된 몸을 다른 시각에서 인식하게 한다. 무너진 집에 깔려죽은 할머니의 발은 꼭 횟독 오른 아버지의 발 같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 발이 곧 죽음의 표상이 되었다. 힘겨운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세월의 풍상만을 경험했던 할머니에게 횟독 오른 발은 곧 삶의 끝을 현현한다. 방부제 같은 ‘명랑’으로 유지되던 할머니의 몸은 결국 산(生)몸처럼 기억된다. 그녀의 몸을 흙더미와 돌멩이로 짓누르는 것은 죽음의 순간으로 족할 뿐이다. 손녀는 흰 명랑가루처럼 곱게 빻아진 할머니의 뼛가루를 맛보고 명랑을 먹는다.


덧글

  • 택씨 2009/11/30 10:45 # 답글

    발은 참으로 비밀스러운 곳인데 말이죠...
    저도 집사람의 발 빼고는 자세히 본 경우가 별로 없군요.
    작가의 발상이 특이하게 느껴져요.
  • 베리배드씽 2009/12/01 17:30 #

    고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평생 맨 발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말도 있더군요.
    발을 보는 건 어렵지 않으나 발을 잡을 정도의 관계는 드물죠. ^^
    천운영은 몸에 대한 감각과 묘사가 섬세한 작가예요. 저 소설은 그 중에서 따뜻한 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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