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ssor Sisters-<Mary>, <Laura> by 베리배드씽

 씨저 시스터즈. 나름대로 운율을 맞춘 재기발랄한 그룹명 같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재기발랄보다는 색기발랄에 가깝다.  Scissor는 레즈비언의 섹스 체위 종류 중 하나이다. 게이그룹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뿌렸고, 지금은 유일한 여성멤버였던 패디 붐이 탈퇴하면서 명실공히 완전한 자매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음악은 글램록과 디스코에 일렉트로니카를 잘 입혀 팝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엘튼 존과 퀸을 향한 흠모를 숨길 줄 모르는 이들은 미국 출신임에도 고국에서보다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쪽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004년 Scissor Sisters 1집 <Scissor Sisters>에는 'Mary'와 Laura가 실려 있다. 1집은 탱글탱글한 알짜배기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의 방향성이나 컨셉트라는 측면에서 다소의 난삽함은 좀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Mary' 는 왁자지껄 명물들이 모인 고등학교 교실에서 조용하다보니 오히려 눈에 띄는 모범생 같다. 팀 멤버인 제이크의 친구였던 메리의 죽음을 기리는 노래.



 뮤직 비디오를 본 뒤 이 장면이 떠올랐다.

  친척 결혼식에 간다던 사장은 오후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전화를 한다. 그의 말에는 술 냄새가 느껴진다. 아들의 안부를 묻는 사장에게 나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고 둘러댄다. 중국철학사를 맡긴 학생은 찾으러 오지 않고, 적은 양의 복사거리만 들어온다. 나는 한 대의 복사기 전원을 끈다. 나는 손가락마다 가느다랗게 나 있는 금을 들여다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후로 몇 번이나 종이에 손을 베었을까 생각한다. 손가락 베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게 되자,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손바닥을 복사기 화면에 펴고 초록색 복사 버튼을 누른다. 종이를 올려놓았을 때보다 더 많은 빛이 얼굴에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흠칫 눈이 감긴다. 손금이 선명하게 찍힌 왼손이 나온다. 나는 계속해서 복사 버튼을 누른다. 왼손이 10장이 된다. 20장이 된다. 다시 오른손을 올려놓고 왼손으로 복사 버튼을 누른다. 오른손에 나 있는 손금은 왼손보다 생명선이 조금 더 길고, 진하다.
  나는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다. 따뜻한 빛이 얼굴을 스친다. 눈을 꼭 감은 얼굴이 종이에 찍혀 나온다. 미간의 주름이 선명하다. 꼭 감은 두 눈이 깊은 웅덩이처럼 보인다. 거기에 손을 대본다. 그 검은 동굴 안으로 손이 빠질 듯 하다. 나는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눈을 뜬다. 복사기가 작동하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절대 눈을 감으면 안 돼. 주문처럼 몇 번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복사기에 얼굴을 댄다. 빛이 눈을 통과할 때 온몸이 저절로 움찔거린다. 잔뜩 힘을 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나는 눈물이 흐르도록 그냥 둔다.
  복사되어 나온 내 얼굴은 무엇인가에 잔뜩 놀란 모습이다. 내 얼굴이 이처럼 초라하게 보일 때가 없었다. 이처럼 낯선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흰자만 보이는 눈동자는 누구와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기세다. 미처 내가 몰랐던 내가 거기 들어있다. 나는 바닥에 얼굴을 내려놓고 그 옆에 오른손과 왼손을 놓는다. 내가 나를 노려본다. 나는 한 발을 들고 두 눈을 지그시 밟는다. 꽉 다문 두 입이 내게 뭐라 말하는 듯 하다. 나는 발을 뗀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내 눈이 그대로 거기 박혀 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인다. 턱이 타들어가고, 코가, 눈이 그리고 이마가 타들어간다. 불은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옮아붙는다.

-윤성희, <레고로 만든 집> 중

 나중에 혹여 단편영화 같은 것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끼워넣고 싶은 장면이다.



 
 1집의 타이틀곡. 씨저 시스터즈 스타일을 아우르는 평균치의 느낌이다. 스티비 원더 풍의 댄스곡이라는 평이 많은데, 난 Raphael Saadiq의 'Still Ray' 가 생각났다.


덧글

  • 미루엘 2009/02/25 00:42 # 답글

    시저즈... 무심코, 상상...해봐도 모르겠네요 .@.@...
    근데, 여성멤버가 탈퇴했는데 왜 자매그룹이 되나요???

    메리란 곡은 정말 좋네요.. 로라보단... 메리, 로라, 시저즈... 아 안되 자꾸 상상이;;;
    인용글은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납니다.
  • 베리배드씽 2009/02/26 02:14 #

    위키피디아 찾아보면 scissoring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볼 수 있답니다.
    여성멤버가 탈퇴하고 게이들만 남아서 자매그룹이라고 지칭한 것~

    로라는 좀 그루브하고 메리가 듣기 편하죠. 슬프기도 하고요.
    인용글은 정말 성냥팔이 소녀 이미지하고도 연관될 수 있겠네요. 이미지들이 번식하는 과정이요. 비교하자면 성냥팔이는 좀 환상적이고 인용글은 지독히 현실적이죠.
  • 2009/02/25 12: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베리배드씽 2009/02/26 02:16 #

    반가워요^^ 윤성희가 점점 작품색이 당혹스러울만큼 바뀌고 있고, 그 작품들도 신선하지만 가끔 예전 소설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저는 이 소설의 결말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무거운 돌을 던져 굴뚝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
  • 하루 2009/02/25 22:15 # 삭제 답글

    ㅎㅎ 역시 팝은 익숙하지 않아요 >.<

  • 베리배드씽 2009/02/26 02:17 #

    요즘 음악을 많이 들어서요. 저도 팝을 다 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 뮤지션에만 좀 관심을 갖는 정도예요ㅋ
  • 사이동생 2009/02/26 11:52 # 답글

    스캐너에 얼굴을 대고 스캔을 하면 그 사람이 죽은 다음의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시저 시스터즈는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때는 개러지 열풍때 튀어나온 또다른 개러지 밴드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한묶음으로 취급할 밴드가 아닌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시디를 사지는 않았습니다. mp3도 없습니다 ^^;;;)
  • 베리배드씽 2009/02/27 14:02 #

    아 그래요? 좀 무섭네요. 그룹 이름이 그런 느낌도 드네요. 이름이 좀 치기도 있어 보이고요. 음악은 개러지쪽도 아니고, 한 장르로 구분하기가 모호해요. 글램록과 디스코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듯. 음악이야 각자 취향이 있으니까요. 사이동생님처럼 록 좋아하시면 아주 꽂히지 않을 수도 있죠 ㅎㅎ
  • 호잇 2012/06/18 21:19 # 삭제 답글

    태클은 아닌데여 여성멤버의 이름은 Ana Matronic이에요. 이언니 탈퇴 안하고 같이 활동 열심히 하는걸로 알고있어요. 패디 붐은 드럼 치시던 남자분이에요. 이 분이 탈퇴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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