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의 D.I.S.C.O 뮤직비디오. 톡톡 튀는 네온컬러가 복고라는 키워드 안에 어우러진 디스코와 퓨쳐리즘을 명확하게 이미지화한다. 노래를 교태 넘치게 연기해내는 엄정화의 독보적 재능은 여기서도 돋보인다. (어리고 싱싱한 섹시 여가수들도 무대 위에서 엄정화만큼 '연기'를 잘 하지는 못한다.) 노래를 듣고 한동안 YG 엔터테인먼트는 어떤 곡을 써도 대중으로부터 평균 이상의 반응을 얻어내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주 물이 올랐다. 그간 잘 닦아놓은 흑인음악적 기초에, 빅뱅 두 번째 싱글까지는 약간 불안불안했던 대중적 감각이 이젠 동물적이다 싶을 만큼 예민해졌다. 이 노래에서 디스코는 Daft Punk의 'Harder, Better,Faster, Stronger' 를 연상시킬 만큼 익숙한 일레트로닉 사운드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흥겹고 중독성도 꽤 있다.
그러나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몰입하게 되는 부분은 다른 데 있다. 2분 20초 가량이 넘어가면 빅뱅의 T.O.P이 피쳐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몇 달 전 마돈나가 새앨범의 타이틀곡 'Hard Candy'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피쳐링으로 내세웠던 것이 연상된다. 두 연륜의 댄스여왕들은 섹시하고 파릇파릇한 남자들의 피를 수혈받음으로써, 억지로 젊어보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워풀한 노련미를 과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Hard Candy'에서 마돈나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조합이 파트너쉽에 기반한 협업에 가깝다면, 'D.I.S.C.O'에서 T.O.P은 마돈나에 얹혀진 고명에 가깝다. 전자가 힙합이고 후자는 디스코라는 장르적 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 실은 '고명'의 색스러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싶다.
이 뮤직비디오 및 엄정화의 D.I.S.C.O에서 피쳐링으로 활동할 때의 T.O.P의 컨셉만 놓고 말한다면, 그가 발산하는 섹시함은 어딘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단박에 영화 <A.I>에서 주드 로가 맡았던 남창 로봇 '지골로 조'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포마드를 바른 듯 윤기나게 빗어넘긴 머리와 그린 듯 섬세하게 올라간 눈썹은 흐트러진 자연미를 추구하는 요즘의 섹시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찡긋거리는 눈썹에서의 차가운 위트와 금속적이면서 인공적인 섹시함은 인간미가 제거되었기에 더욱 매혹적이다. 즉 남창 로봇은 정서적인 교환을 감담하지 않아도 절정의 만족감만큼은 확실히 보장하리라는 기대를 가능하게 한다. 정교하고 기계적인 맞춤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판타지는 남성들이 제복 여성에 대해 품는 환상의 극단화된 형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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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꺾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데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 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옆에서 까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최영미, Personal Computre,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 비평사, 1994.
386 세대인 최영미 시인이 퍼스널 컴퓨터와의 '소통'을 시의 제재로 삼은 것부터가 묘한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 시의 메시지는 마지막 두 연만 읽어도 거의 파악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는 초코파이 CM송의 세계에서 접어야지, 이를 아기를 키우는 모자 관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는 건 곤란한다. 가장 내밀한 인간관계라 여겨지는 연인 사이라 해도 '염화미소'의 경지를 절로 터득하게 되는 게 아니다. 조정과 타협이 필요 없어진 관계는 서로에게 맞춤한 관계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 관계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렸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섹스에 대해 강박적으로 누구의 관점이 더 쿨하고 더 촌스럽다는 식으로 가치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몸의 교합은 분명 가장 사적이고 온전히 공유되는 소통 수단일 수 있다. 최영미의 시는 그래서 발칙하고 도발적이면서도 결국 씁쓸할 만큼 서글프게 느껴진다.
열일곱에 이 시를 읽고 머리가 멍해졌었다.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표현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다. 지금은 오히려 거침없으면서도 자조적인 표현에서 재미를 느낀다. 나도 어지간히 뻔뻔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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