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해피엔딩-미스트리스 by 베리배드씽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낭만적 사랑의 표상인 동화가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방법은 '그들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다. 이를 해피엔딩이라고 보는 데는 사랑의 영속성에 대한 숭배라는 판타지가 숨어 있다. 영화 <미스트리스> 또한 마리니와 벨리니라는 10년지기 연인이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확신을 준다. 그러나 이 해피엔딩은 잔혹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거듭 확인하며 (죽음에 이를 듯한 황홀경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를 듯한 섹스를 거듭한다. 이를 애증으로 이해하면 안전한 설명이 되지만, 사실 <미스트리스>에서 그려지는 관계는 그 이상으로 지긋지긋하다.
 Guilty Pleasure에 희생당해 본 적이 있거나, 딱지가 앉은 상처를 자꾸 건드려서 다시 생채기를 덧낼 때의 쾌미를 안다면 마리니와 벨리니의 관계에 대한 이해도 보다 쉬울 것이다. 프랑스 사교계의 카사노바 마리니는 10년 전, 스페인과 이탈리아 혼혈이며 영국 귀족의 부인이었던 벨리니와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태어난 어린 딸이 죽자 이들에게는 동물적인 본능, 고통스러운 쾌락만 남는다. 서로가 사랑을 부정하면서도 마리니는 벨리니를 찾고, 벨리니는 마리니를 미워할지언정 그가 없는 시간은 지루하다고 한탄하며 몸을 섞는다. 마리니는 벨리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귀족처녀 에르망갸드와 결혼한뒤 파리를 떠나 조용한 해안가 마을에서 새출발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리니는 다시 주변을 맴도는 벨리니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아르망갸드가 유산한 뒤 그녀를 떠나 다시 벨리니와의 파리생활을 시작한다. 
 마리니와 벨리니의 기묘한 관계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요인은 중독성에 있다. 그들은 각각 파리 사교계에서의 명성과 귀족 부인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서로에게 무섭게 빨려들어간다. 독점욕과 탐닉으로 점철된 사랑은 이미 중독에 가깝다. 그러나 진정한 중독은 쾌락의 정도나 의존도를 넘어서, 중독의 대상을 끊기 위한 노력과 실패가 동반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여기서는 바로 딸의 죽음이 서로를 끊고 싶게 하는 동기가 된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 운명적 비극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랑 안에 고립되면서 고인 물처럼 썩어간다. 이 때부터 벨리니와 마리니의 관계는 무한 악순환의 궤도에 올라선다. 알제리 사막에서 딸의 시신을 태우는 동안 그들은 그 앞에서 섹스를 나눈다.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뒤엉킨 모습은 음란할 수도 있겠지만 <미스트리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섹스는 이미 불모의 것이다. 벨리니와 마리니의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겹친다. 즉 그들이 관계를 맺는 이유는 대단한 쾌락을 바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금단현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연기(acting)의 기술에 있다. 영화에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본질은 달라졌을지라도 벨리니와 마리니가 사랑하는 모습은 딸이 죽기 이전과 그 이후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는 반대의 경우가 더 널리 통용되지만, 때때로 제스처, 표면이 의미, 핵심을 규정하기도 한다. 사랑을 유지하는 데도 이러한 제스처가 중요하다. 연인들이 서로의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는 의례적 행위는 사랑이라는 본질을 강화한다. 그것이 비록 열정이 아니라 건조함과 삭막함으로 채워졌다 해도, 벨리니와 마리니에게 격렬한 섹스라는 소통의 제스쳐는 변함없이 지속된다. 그들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사랑을 연기한 것이다. 마리니는 결코 가시돋힌 흑장미같은 벨리니보다 잘 맞는 짝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는 벨리니도 마찬가지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